중학교 체력 측정 시간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 A가 다른 반 친구들과 압도적인 격차를 내며 1등으로 들어왔다. 나를 비롯한 반 친구들은 A에게 어떻게 그렇게 빨리 뛸 수 있느냐고 물었다. A는 쑥쓰럽게 웃으면서, 자신은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운동을 해와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 다음의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내가 특별히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전부터 뛰어왔던 시간만큼 같이 뛰었으면 너희들도 나보다 잘 뛸 수 있을 것이다’
달리기 거리 1.6km 내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도 이를 악 물고 뛰었는데도 하위권에 안착한 나는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이 차이가 벌어진 것은 애초에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에게 A의 말은 적잖은 충격을 줬다.
그림을 잘 그리는 B도 있었다. 미술 수행평가로 다른 친구들이 연신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여 시작도 못 하는 동안, B는 훌륭한 그림을 짧은 시간 내에 순식간에 그려냈다. B는 잘 그린다는 친구들의 칭찬에도 별 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그리냐고 물었을 때도, 나는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그가 짧은 시간 안에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림 연습에 남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쏟았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야 단순히 잠재력만으로 별 다른 연습을 하지 않고도 두각을 드러내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물론 재능도 뒷받침이 되어야 하긴 하지만 장시간의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커져갔다.
쌓아온 시간의 격차는 단순히 밤을 샌다던가, 정신을 번쩍 차린다든가 하는 정신론으로는 눈꼽만큼도 좁혀지지 않는다. 평소에 달리기를 하지 않던 사람이 마라톤에서 프로 마라토너를 단순히 이 악문다고 이길 수 있겠는가. 승리는 커녕 완주조차 버거울 것이다.
나에게 그룹 프로젝트 2주차는, 개발 또한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기간이었다.
남들은 단순하게 해결하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과, 그렇게 만들어진 어설픈 코드를 보고 너무나도 괴로웠다. 마감이 닥치는데, 시간을 오래 썼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고 결국 쉽고 더러운 방법으로 우회해야 할 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나는 왜 이렇게 개발을 못 할까.
그렇게 내가 남들보다 못 하는 변명을 찾아 기억을 연어처럼 거슬러 가는 과정에서 A와 B 생각이 났다. 그리고 다시 기억을 되감았다. 개발에 내가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는가? 나는 개발에 얼마만큼의 관심을 쏟았던가? 이 기간의 괴로움은 남들이 취직을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 연습을 하던 동안 탱자탱자 허송세월을 보내며 시간을 낭비한 나에게 내려진 응당한 벌이었다.
단순히 나보다 퍼포먼스가 뛰어난 사람들을 질투하고 자책하면서 음의 극한으로 발산하는 감정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그러자 나를 괴롭게 한 문제를 순식간에 치우고 결과물을 뽑아내는 저들 또한, 이미 문제를 진작에 겪었고, 괴로워 했고, 견뎌내어 해결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쌓아온 시간의 격차는 명백하다. 하위권이 뻔한 레이스에서 내가 할 있는 최선이란 무엇일까. 끝까지 달려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운동 유튜브 영상들을 보다 보면 항상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프로의 루틴을 따라하지 말고 본인의 상황에 맞는 운동을 하라
이 6주의 기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평소부터 개발을 해온 사람들의 퍼포먼스를 내가 따라갈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실제로 그렇게 비슷한 퍼포먼스를 내려고 수면 시간을 줄이다가 오히려 뇌의 논리 회로가 과열되어 개발 효율이 극감하는 부상을 입었다. 평소였으면 얼마 안 걸렸을 일들까지도 꽤 지연됐다.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남들을 무리해서 따라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은, 현재 내 능력보다 살짝 도전적인 목표를 잡아야 한다. 설령 모니터 너머로 저런 허접이 부스트 캠프를 왜 왔을까 비웃음을 사더라도. 남들의 시선에 주눅들어 핑크 덤벨 조차 들어올리지 않고 대회장을 도망치면 자괴감 하나밖에 못 얻지만, 받아들이면 자괴감과 함께 어제보단 성장한 나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아마). 솔직히 말해 이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의 괴로움도 언젠가는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